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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FTA통과 제물로 던져진 통상절차법

처음 통상절차법을 만들자고 말한 때가 2005년이었다.

계기가 된 사건은 한칠레 FTA였다. 농민이 죽고 다치고, 말마따나 '아스팔트농사'를 지어 가면서까지 격렬히 저항하고 싸워도 결국 FTA를 저지하지 못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FTA를 체결하자고 결정하고 그렇게 밀어 붙이면, 당사자들은 결국 당할 수밖에 없다. 죽어라고 싸워도 막지를 못한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연히 헌법을 살펴보다, '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한 국회 동의권'에 눈이 번쩍했다.

그 뒤 이와 관련된 문헌과 국회 속기록을 뒤졌고, 주변에 법률자문도 구했다. 그렇다.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권한은 행정부가 체결한 조약에 대해 그저 찬반만을 표하고 조약문자체에 대해서는 일점 일획도 수정하지 못하는 그런 동의권이 아니었다.

분명 국회의 권한은 비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체결’에 대한 동의권도 명시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내용의 국회동의권 조항이 만들어진 때는 박정희정권때 부터다. 그 이전 이승만정권때는 대통령이 조약의 체결권과 비준권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국회는 비준동의권만 갖고 있었다. 그러다 4.19혁명이후 내각책임제 헌법은 내각에게 체결권, 대통령은 비준권, 국회에는 비준동의권을 부여했었다.

이후 스크린쿼터 영화인 대책위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시민사회에도 제안을 했다. 정부가 이미 결정하고 그 때 찬반을 표해봐야 언제나 늦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상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그리고 협상과정에도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통상문제에 대한 우리 시민사회의 인식수준은 결코 높지 않았다. 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 뒤 국회쪽에 통상절차법이란 걸 제정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반응은 냉담했고, 결국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의원이 대표발의해서 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회에 몇 개의 안이 더 제출되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의원이 제출한 안도 하나 포함된다. 총 5개의 통상절차법안이 제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외교통상부의 강력한 반대와 집권여당의 무관심때문에 법안제정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이후 대선에서 이명박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상황은 급변했다. 민주당이 통상절차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18대 국회 개원조건으로 통상절차법 제정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절차법 제정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심지어 작년 초쯤에 열린 국회의 통상절차법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나는 ‘당신 혼자서 통상절차법 만들자고 말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한나라당 간사의 꾸지람(?)마저 들어야 했다.

그랬던 통상절차법이 민주당이 만든 재재협상안(10+2)중 마지막 두 개 즉 국내대책에 포함되었고, 결국 여야 협상을 거쳐 소관상임위인 외교통상위를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외교통상부가 반대를 했지만 여당측이 나서 이를 무마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미FTA를 통과시키기 위한 일종의 ‘미끼상품’ 비슷한 역할을 통상절차법이 하게 된 셈이다.

애초부터 이익의 균형을 말하기조차 민망한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협상, 독소조항의 교과서 같은 협정문이 나오지 않게끔, 헌법이 규정한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만들자하고 한 법이 통상절차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런 잘못된 통상협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통상절차법이 제물로 던져진 셈이다.

심지어 여야가 합의처리한 통상절차법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통상협정의 체결절차는 협상전단계, 협상단계 그리고 협상후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통상절차법은 이 매 단계에서 국회의 민주적 통제와 이해당사자 및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코자 하는 데 그 기본 취지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통상협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이고 그 절차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처리된 법안의 내용은 여기에 못 미쳐도, 한 참을 못 미친다.

야당측이 요구했던 별도의 독립적인 통상위원회는 외통부의 반대에 밀려, 온데 간데 흔적도 없다. 그냥 ‘자문’만 하는 민간자문위원회로 만족하란다. 이런 위원회는 지금도 있고, 더 있어 봐야 예산낭비만 된다.

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 중소상인등 피해계층을 비롯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고자 만들자고 한 법이 통상절차법이건만, 막상 국회의 권한강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협상의 매 단계에서 국회와의 상호 협의는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한미 FTA는 아예 ‘논외’다.

결국 이번에 처리된 통상절차법의 요지는 이거다.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자’!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없는 거 보다 낫지 않냐.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럴 바에야 없는 게 낫다.

왜냐 하면 잘못된 법률을 고치는 거 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Posted by 이 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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